김항규 목원대학교 명예교수 심리상담사

하얀 쌀밥을 두 개의 병에 각각 담아 넣고 한 달 동안 한쪽 병에는 “짜증나” “미워”와 같은 부정적인 말을 계속하고, 한쪽 병에는 “고맙습니다”, “사랑해”와 같은 긍정적인 말을 계속해 보는 실험을 MBC 방송국 아나운서실에 행한 바 있다. 한 달 후 실험을 마치고 양쪽 병 안에 있는 밥의 형태를 살펴보니, 부정적인 말을 건넨 병 안의 밥은 새까맣게 썩어 있는 반면, 긍정적인 말을 던진 병 안의 밥은 하얀 곰팡이가 피어 있을 뿐 밥의 흰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 이 실험을 통해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가 실제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다. 말이 밥에 미치는 영향이 그러할진대 하물며 말이 인간 상호 간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게 하는 실험이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살게 된 이유는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코를 풀어주면서 “흥해라 흥”이라는 말을 반복하였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혹자는 상대방이 던진 한마디의 말로 인해 일생을 깊은 마음의 상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자는 상대방이 건네준 한마디의 말이 힘이 되어 삶의 의욕을 되찾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말은 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을 살릴 수도 있고 상대방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수도 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는가 하면,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성경은 사람을 죽이는 저주의 말보다는 사람을 세우고 살리는 축복의 언어를 사용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 15:11),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는 등 모두가 말의 역기능과 순기능을 역설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왜 이처럼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일까? 그것은 말에는 힘, 즉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은 그 속에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나 타인을 향해 좋은 말, 긍정적인 말을 하게 되면 좋은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되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에는 예언 능력이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은 말에 내포된 에너지의 힘으로 말한 대로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표현들이다. 어떤 내용의 말은 해야 하고, 어떠한 내용의 말은 해서 안 되는 것일까?

첫째, 말은 아껴야 한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말은 은(銀)에 해당하지만 침묵은 금(金)일 때가 너무 많다. 사람이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기 위해서는 6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말은 하기 전에 반드시 한두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그야말로 말의 홍수시대이다. 악성 댓글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 우리들의 입에 파수꾼을 세우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 때마다 파수꾼의 허락을 받는 것이 좋다. 명절이 오면 청년들이 친척들로부터 듣고 싶은 말 1위는 “아무 말도 안했으면 좋겠다”가 차지했다고 하는 조사 결과가 있다.

둘째, 따뜻한 말, 격려의 말, 공감의 말은 아끼지 말고, 비난과 비판, 정죄와 훈계의 말은 삼가야 한다. 아이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부모들이 자신들을 향해 던지는 말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즉, 자신이 소중한 사람인지, 괜찮은 사람인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지 혹은 무가치하고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 결과 자존감이 높은 아이와 자존감이 낮은 아이가 되는 것이다.

셋째, 상대방에 대해 비판하는 말, 무시하는 말 뿐만 아니라 옳은 말도 때로는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세상에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따뜻한 말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따뜻한 말은 공감해주고 배려해 주는 말이다. 상대방에게 옳은 말을 하고 싶으면 따뜻한 말을 먼저 건넨 후 상대방이 마음의 문을 열었을 때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입장이나 처지에서 생각하는 옳은 말만을 서로 내세워 논쟁을 거듭해보았자 서로 간에 갈등의 골만 더 깊어질 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세상에는 이런 생각도 옳고 저런 생각도 옳은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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