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항규 목원대학교 명예교수 심리상담사

흔히 자식을 키우는 일을 농자 짓는 일에 비유하여 ‘자식 농사’라 부르기도 한다. 자식을 키우는 일이나 농사를 짓는 일이나 생명체를 키워내는 경건한 일에 종사한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자식을 키워내는 것을 굳이 농사짓는 일에 비유하는 것은, 농부의 마음(農心)으로 농작물을 고이 길러내는 현명한 농부를 통해 자녀를 바람직하게 키워내기 위한 지혜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 송나라 때 어리석은 농부가 있었는데, 그는 자기 논에 모를 심어놓고 다른 논의 것보다 늦게 자라는 것 같은 조급증에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논으로 달려가 모가 얼마나 자랐는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벼가 너무 더디게 자라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농부는 초조한 마음에 벼를 뽑아서 키를 높여주고는 피곤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들에게 ”오늘 내가 벼들을 조금씩 뽑아주어 잘 자라도록 도와주고 왔지“라며 그 일을 너무 열심히 한 탓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그 농부의 아들이 급히 논으로 가보니 벼들은 이미 다 말라 죽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맹자(孟子)의 언행을 기록한 책 『맹자(孟子)』 ‘공손추(孔孫丑)’에 소개된 ‘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는 사자성어에 얽힌 일화이다. 이를 직역하면, 모를 뽑아(즉, 발묘하여) 억지로 자라는 것을 돕는다(즉, 조장하다)는 의미로, 순리에 따르지 않고 성급하게 억지로 일을 하려 하다가는 일을 망치고 만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자식을 기르는 부모들 중에도 자식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온전히 부모 자신들의 뜻에 따라 자식들을 남들보다 더 잘 키워보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혀 너무 어린 나이에서부터 자식을 억지로 교육현장에 몰아넣어 오히려 자식의 앞날을 망쳐버리고 마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극성 학부모들이 있다. 이들이 곧 현대판 ‘발묘조장’의 주인공들이다.

현명한 농부는 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땅을 기름진 땅으로 개간하여 옥토로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마찬가지로 자녀에게 현명한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자녀가 좋은 환경에서 건강한 정신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부부간에 그리고 부모와 자식들 간에 상호 존경과 신뢰에 기초한 사랑이 함께하는 가족 분위기나 가족문화를 조성하는 데 노력하여야 한다.

현명한 농부는 어떤 품종을 어떤 토질의 땅에 심어야 건강하게 자라는지를 잘 안다. 마찬가지로 현명한 부모는 자녀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자녀들의 적성이나 능력은 어떠한지를 파악할 줄 알고, 장차 자녀가 거기에 걸맞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자녀의 뜻이나 자녀의 적성이나 능력을 무시한 채 억지로 부모가 원하는 쪽으로 자녀를 몰아가지 않는다.

현명한 농부는 날마다 농작물을 보살피고 정성을 다해 가꾸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어디서부터는 농민 자신의 노력이 아닌 자연의 섭리에 맡겨야 하는지를 잘 안다. 자연이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는 이를 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자연에 감사하고 순종하며 인내로 기다릴 줄 안다. 농사가 하늘과 땅과 사람(天地人)의 합작품이듯이, 자식 농사 또한 부모와 자식과 사회와 국가 그리고 하나님의 합작품이다.

현명한 농부는 한 번의 농사에서 설사 실패했더라도 이에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가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면서 다시 도전한다. 마찬가지로 현명한 부모는 설사 자식이 어떤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이를 비난하거나 책망하지 않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같이 원인을 탐구해보고 재도전 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자식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은 부모와 국가가 수행해야 할 과제이지만, 정작 공부를 하는 것은 아이의 과제이다. 말이 목말라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물가로 안내하는 것은 말 주인의 과제이지만, 물을 마실 것인가 말 것인가는 말 자신의 과제이다. 말의 목을 휘어잡아 억지로 물을 먹게 해서는 안 된다. “다 네가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혹은 “다 널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라며 아이가 어릴 때부터 사사건건 가르치고 지도하고 훈계하는가 하면, 아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된 사랑으로 자식 농사를 망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농심(農心)과 자식을 키우는 마음은 정직과 근면, 인내와 감사, 순응과 겸손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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