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항규 목원대학교 명예교수 심리상담사

직장을 은퇴하고 노년을 맞으면서 삶을 대하는 사람들의 양태는 다양한 것 같다. 은퇴 후에도 노후의 삶에 필요한 경제적 여건이 부족하여 여전히 일자리를 찾아 고된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노후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있음에도 은퇴 후 갑자기 찾아온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허둥대면서 심한 고독감과 상실감, 소외감에 괴로워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제는 일에서 벗어나 맘껏 즐거움을 추구하겠다며 주위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스포츠를 즐기거나, 국내외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은퇴 후 찾아온 나만의 자유 속에서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며, 내면을 가꾸고 그 속에서 노년의 행복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노년에까지 친구나 가족 등 남을 통해서 행복을 추구하려는 삶은 불행한 삶이다. 자신의 행복 여부가 자신이 아닌 남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란 잘해주면 이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쉽게 고마움을 망각하는가 하면, 잘못 해주면 서운해하고 원망하는 존재들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닌 그런 존재이다. 영원한 친구는 없다. 긴 세월을 같이 살아온 아내에게도 너무 전적으로 의지하려 하면 할수록 더 멀어지려 하기에 서운하고 슬퍼진다.

그렇다고 노후에는 남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는 아니다. 남에게 마음껏 베풀어 주고 배려해주되 그 자체만으로 즐거워하고 어떤 대가도 기대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여유가 있으면 재물에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슬쩍슬쩍 남몰래 베푸는 선행은 경험해보지 못하면 결코 느낄 수 없는 뿌듯한 행복감이다. 마음의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이웃에게 심리상담을 통해 내가 지니고 있는 상담사로서의 재능을 무료로 베풀어 주는 시간 또한 너무 보람되고 뿌듯한 행복한 시간이다.

한편, 스포츠를 즐기거나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삶도 또한 한계가 있다. 육신은 날로 늙어가기 때문에 외국을 여행하거나 여행을 위해 운전을 하는 활동도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어느 날부터는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날이 도래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노년의 즐거움을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즐기되 다만 이런 활동에 전념하지는 말라는 의미이다.

은퇴 후 갖는 나만의 시간은 과거 나를 구속했던 것들 – 직장에서 수행해야 할 과제, 남을 의식한 삶, 재물이나 실적 쌓기 등 –에서 해방되어 만끽하는 자유 그 자체만으로 행복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나만의 시간에 TV나 음악도 시청하고, 과거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여생의 방향을 탐구해보는 시간이다. 혼자만의 시간이기에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직장에서의 삶을 핑계로 멀리하기만 했던 취미활동도 습득하거나 즐겨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직장 일을 핑계로 소원하기만 했던 아내와 같이 요즘 어디를 가든 잘 정비되어있는 시냇가 산책길이나 숲길을 같이 걷다 보면 부부간의 소통도 이루어지고 몸의 건강도 얻는 일석이조의 즐거움을 얻는 시간이기도 하다. 과거 읽었던 책을 꺼내 다시 읽어 보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거나 먹물을 붓에 담아 글씨를 써보는 시간 또한 행복한 시간이다.

은퇴 후 내게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은 과거 젊은 시절 경험했던 강렬하고 짜릿하지만 짧았던 행복감은 아니지만, 느긋하고 은은한 편안함 속에서 느끼는 행복감에 젖는 시간이다. 고통스럽고 우울한 시간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바라보고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의 시간이기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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