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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럼]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박 경 은 철학박사(심리학전공)

이런 말을 떠올린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이 소수 몇 명에게 해당되는 말인가에 대해 현실적으로 찾아보게 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이 더 심화되면서 ‘사람에는 귀천이 없고,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라는 말로 변형되었지만, ‘사람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도 의심스럽다. 이 말 또한 스스로 위로하기 위한 말일뿐이다. 이것을 ‘자기 위안’이라고 한다.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별개로 분류가 한다. 또한 배운 자는 못 배운 자를 동급인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머리에 지식을 쌓는 일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교만의 행동을 자신도 알지 못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말에 적용되는 사람은 ‘사람이 된 사람’에게 쓰이는 문구였다. 여기서 ‘사람’이란 단순 생명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됨됨이’, ‘이룸’의 뜻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인격을 갖춘 사람들끼리의 소통되는 문구라서 아주 극소수 사람이 이에 포함된다. 보이는 존재가 보이지 않는 존재까지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안목이라면 그것이 진정한 삶, 인간이 추구하는 삶이다. 그 사람의 깊이를 볼 수 있고, 존중할 수 있어야 삶을 나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싶다. 설령 깊이를 볼 수 없다하더라도 ‘사람’ 그 자체의 존귀함을 인정하는 마음이면 되지 않을까한다. 또한 우리의 ‘꿈꾸기’는 이룰 수가 없기에, 이루어질 수 있는 확률이 적기 때문에 꿈꾸기를 하고, 추구하는 삶을 갈망하는 것인가?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는 방법은 ‘내가 만족하면 됐어.’라는 ‘자기암시’법으로 살아간다. 보여 지는 허세(지위, 학벌)로 인격을 과하게 무시하다보니 ‘개무시 당했다.’라는 언어도 흔하게 사용한다. 점점 우리는 겸손과 겸허의 자세는 사라지고 개인주의를 넘어서서 인격무시까지 포함한 개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것이 너무 팍팍해서 하나의 직업이 평생직업이 될 수 없어서, ‘돈 되는 일은 다해요.’라고 우스게소리로 말을 던지지만 그 말이 진심이 되는 현실이다. 무엇이 개인의 주(主) 전공인지를 알 필요도 없이 하루를 쉴 틈 없이 바쁘게 전국구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반면에 무기력 속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부익부빈익빈’처럼, 음과 양, 있음과 없음, 존재와 부재, 의식과 무의식, +극과 -극, 남자와 여자, 삶과 죽음, 동전의 양면 등으로 대극으로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잠시 생각했다.

인생의 가치는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특히 그들이 지닌 마음결이다. 그러나 사람을 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소통이 아닌 불통인 것이 안타깝다. 어떤 상황일 때 불통임을 알 수 있는가? 서로가 좋은 감정인 상태일 때는 ‘이런 호인이 없을 정도’로 친절하다. 그러나 자신이나 가족에게 고의든, 실수든 손해를 입혔을 때는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바뀐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점점 마음을 닫거나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위축되는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예외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위, 학연, 지연(인맥)관계가 높고, 경제력이 풍족한 사람들 중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있다. 그들은 보여 지는 그것이 전부인 냥 살아간다. '사람'으로 보여 지지 않는 그 무엇이 결국 자신의 ‘됨됨이’를 탐색해야 한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진실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 모두인 듯하다.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나' 또한 불완전한 사람으로 수없이 흔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나’라고 잘 할 수 있을까? 나 또한 장담할 수 없다. 모두가 가난한 사람이라서 물질이나 마음이 풍족한 사람들이 먼저 베풂을 실천해 주는 것이 삶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사는 방법인 듯하다. 이것도 저것도 선택하지 않아서 ‘나’(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외에는 무관심 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가치를 갑을관계에서 무시당하고 짓밟히더라도 물질보다 낮게 평가하지 말기를 바란다. 버티기 힘들 정도로 힘이 든다면 ‘그들은 현세에서 육체만이 사는 거라고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라고 ‘평가절하’하는 방법도 있지만, 결론은 인간은 모두 연약한 존재라는 것과 삶에 대한 두려움을 스스로 표출하는 방법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와 정신의 균형이 필요하다. 결국 ‘사람’만큼 귀한 것은 없으며, ‘사람’으로 일궈나가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건강한 ‘나’가 있고, ‘너’가 있고, ‘우리’가 있어야 건강한 공동체가 형성이 되고, 사회구성원으로 건강한 나라로 탈바꿈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희망고문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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