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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무서운 본성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얼마 전에 친지가 병아리 일곱 마리를 주었다. 알에서 깬 지 열흘밖에 안 된 어린 병아리였다. 첫날은 그대로 박스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병아리울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답답해 못 견디겠다는 원망 같았다.

그래서 다음날은 김장할 때 쓰는 큰 고무 다라로 거처를 옮겨 주었다. 걸음을 걷기는 하나 다리가 실낱같았다. 더구나 다라 바닥이 미끄러워서 걸을 때마다 비틀거렸다.

혹여 내가 잘못 보살펴서 죽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걱정했다. 몸집이 크거나 작거나 생명이 귀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바짝 긴장했다.

나의 이러한 염려를 미리 알아채기라도 한 듯, 자상한 그 선배는 병아리를 보살피라고 그 어미닭까지 함께 주었다. 그러나 걱정이 되기는 매한가지였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닭장부터 살폈다. 나뿐 아니라 아내 또한 그랬다. 깨끗한 물을 자주 갈아주고 먹이도 때맞추어 잘 주었다. 텃밭에서 자란 좋은 채소도 병아리가 먹을 만하다 싶으면 아낌없이 바치곤 했다.

저녁에는 병아리가 따뜻하게 잘 수 있도록 휘장을 쳤다가 아침에 걷었다.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면서 부모님께 이렇게 하면 효자 소리를 듣겠다고 아내와 마주보며 웃었다.

우리의 지극한 봉양(奉養)으로 병아리가 제법 닭의 모양새를 갖추어 갔다. 어린아이를 키우듯, 병아리가 크는 것에 재미가 붙었다. 닭장 앞에 서서 병아리를 지켜보는 시간이 많았다. 병아리는 어려도 제 본성을 어쩌지 못했다. 모이를 먹이통에 가득 담아 주어도 발로 후빈다. 그걸 보면서 우리 몸속에 들어 있는 성정(性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많이 생각했다.

우리의 성정도 교육이나 자신의 노력으로 극복하기가 저토록 어렵다는 것을 깊이 생각했다.

닭도 사람과 같아서 어미닭의 모성애는 대단하였다. 어미닭은 병아리들의 작은 입으로도 먹을 수 있게 먹이를 쪼아 부수어 주고, 제가 먹으려고 입에 물고 있던 것도 병아리가 먹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다가 병아리가 혼자 힘으로 먹이를 찾아 먹을 만큼 자라나자 제가 먹는 모이통에 병아리들이 모여들면 가끔씩 병아리들을 쪼아 쫒아냈다.

그럴 때마다 병아리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구석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수평아리는 도망치지 않고 어미에게 덤볐다. 이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배은망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머지않아 바뀌었다. 이 수평아리의 항거로 어미닭이 병아리를 쪼는 일이 적어졌다. 그 수평아리는 자신뿐만 아니라 전체 병아리들의 권익을 신장시키는 일을 해낸 것이다.

또, 병아리는 남의 것을 탐냈다. 제 먹을 것이 충분히 있는데도 남이 먹고 있는 것을 빼앗아 먹으려고 한다. 남이 쪼아 먹으려는 것, 심지어 입에 물고 있는 것도 낚아채 잽싸게 구석으로 도망질친다. 그러면 본래 주인이었던 병아리가 다시 빼앗으려고 쫓아간다. 수단이 좋은 놈은 도망치면서 그 먹이를 꿀떡 삼켜 버린다.

아무리 쫓아온들 이미 뱃속에 들어간 것을 어찌하는 수가 없다. 아무리 공을 들였더라도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다.

어미를 포함하여 겨우 여덟 마리가 살아가는 닭장은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아내는 넋을 놓고 닭장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 핀잔을 하지만, 나는 병아리를 통해서 세상을 본다. 나는 어떤 병아리일까. 오랜 생각 끝에 깊이 반성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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