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이심리상담센터 박 경 은 철학박사(심리학전공)

‘더위가 물러간다’는 24절기 중 처서(處暑)가 지났는데도 유난히 여름이 지나가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역설적으로 짜릿함을 주는 날이었습니다. 14명의 여성기업인 대표들과 함께 설악산 봉정암으로 가기 위해서 새벽 4시에 대전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준비해 온 아침을 휴게소에서 펼쳐놓고 먹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는 찌릿한 냄새와 악취가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밥은 맛있었습니다. 새벽에 음식을 해 온 겉절이와 계란말이, 오뎅 볶음, 개인으로 준비해 온 멸치고추 다데기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기 바빴습니다. 다시 차는 고속도로를 달렸고 산행 때 마실 물과 음료 그리고 간식을 배당받아서 가방에 차곡차곡 넣었습니다. 어쩌면 꾹꾹 쑤셔 넣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가방이 빵빵해졌습니다. 팔토시를 찾으려면 또 다 꺼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쑤셔 넣었습니다. 점점 도착 지점이 다가오니 긴장감이 온 몸을 감싸고 있었음을 느끼고도 넘쳤습니다.

드디어 강원도 인제에 도착하였고,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백담사에 도착하니 오전 9시10분 쯤 되었습니다. 우리는 각자 등산장비를 점검하였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나서 가볍게 몸 풀기 준비운동을 하고 단체사진을 찍은 후 9시 40분경에 봉정암으로 향했습니다. 각자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선두와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계곡과 신록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지도 못한 채 감탄사만 연신 내뱉으면서 그 자리에 머무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은 앞을 향해 갔습니다. 항상 처음은 밝은 목소리와 그런대로 고른 숨소리였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말은 없어지고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땀으로 이미 얼굴과 옷은 젖어있었고 계곡의 물속에 빠지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야 하는 고통에 시달리면서 다리를 붙잡고 전진해야만 했었습니다. 몇 시간을 걸었는지 감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쉬어주면 어찌나 감사한지 어떨 결에 철퍼덕 주저앉았습니다. 가는 도중 영시암에서 화장실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냄새는 무엇일까요. 숨을 쉴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급한 나머지 화장실을 갔다 와야만 했었습니다. 어쩌면 내 고향의 냄새인데도 몸이 지쳐서인지 그리 반갑지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영시암에서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고 또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큰 바위와 기암절벽이 많아서 그 경치는 아름답고 장엄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감사함이 절로 터져 나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었습니다. 70대 어르신들이 눈에 자주 보입니다. 이렇게 한 번 가는 것도 다시는 못 올 것 같은 심정인데 어떤 어르신은 이번이 27번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존경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봉정암에 세 번 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한 가지 기도제목으로 정성을 다하니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라고 이해를 했습니다. 대부분 자녀를 위한 기도를 하기 위해서 어르신들이 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자식사랑은 어디까지일까요? 자식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부모 마음은 어디서나 일편단심인 듯 합니다.

드디어 해탈고개를 만났습니다. 네 발로 걸어 올라가야 할 만큼 가파르고 위험했습니다. 이 고개가 사람들이 말하는 깔딱고개인가 싶었습니다. 힘든 장소만 나오면 우리는 ‘여기도 깔딱고개네’ 하면서 서로 웃음을 선사하곤 했습니다. 해탈고개를 넘으니 봉정암까지 0.2Km 남았습니다. 그것쯤이야 했는데, 0.2Km가 마치 0.5Km 이상 되는 거리만큼 힘이 들었습니다. 몇몇 대표님은 무릎통증과 현기증 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내주셨고 서로 옆에서 함께 해 줌으로써 동료애를 최대한 발휘를 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다 안전하게 봉정암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쯤 되었습니다. 얼마나 걸었던 것일까요. 대략 점심시간과 중간 중간에 휴식시간 포함해서 7시간이었습니다. 지인이 미리 챙겨준 응급약과 무릎보호대 등을 잘 사용하였고 그 따뜻한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어서 더욱 감사했습니다.

참으로 설악산으로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봉정암까지 0.2Km 남은 지점에 이런 판말이 있었습니다. ‘천당 극락이 어디에 또 따로 있나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이 지점에 의자가 있었고, 그 곳에서의 바람은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은혜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자연이 주는 무한한 감동은 황홀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는 자연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면서 목적지를 향해 올라왔을 뿐, 자연이 주는 것을 맘껏 누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축복받는 사람인지를, 그리고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함께 할 수 있는 동료가 있었다는 것은 더 큰 축복임을, 그래서 우리는 혼자서는 그 어떤 것도 온전하게 해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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