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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럼] 눈물은 현재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박 경 은 철학박사(심리학전공)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 있다. 이 말의 의미에는 마음이 행복한 사람 중에는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악한 마음’을 다른 의미로 표현하면 ‘위선(僞善)’이다. 생각해 보면, 선(善)의 반대는 악(惡)이 아니고 위선(僞善)이다.

위선은 선을 가장해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 즉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자신을 속이는 것에는 감정, 생각, 행동, 눈빛 등 다양하다. 우리가 관계 안에서 상처를 주고받는 것은 타인에 대한 감정이 섞인 언어와 말투, 눈빛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정신 건강의 중심에는 눈빛에 있다. 눈빛을 통해서 두려움, 불안, 우울, 죄의식, 당당함, 기쁨, 희망 등을 감지해낼 수 있다. 그만큼 눈빛은 대상관계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타인의 시선을 피하거나 이야기할 때 딴 곳을 응시하기도 하고 흥분하고 분노할 때 상대방의 눈을 전혀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눈빛’은 각 개인마다의 자존감과 더불어 인간의 근본문제인 수치심과도 연관이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소통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신의 인정욕구를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어 한다. 즉 소통을 통해서, 인정욕구를 통해서 사랑받기를 욕망하는지도 모른다. 그 욕망은 곧 집착이 된다. 그러한 집착은 부모와의 애착형성의 실패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착은 중독을 동반한다. 중독은 자연스레 일상에 스며들면서 고통을 불러오게 된다. 고통은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지만 상처는 또 다른 에너지원이 된다.

어디 가나 착한 사람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착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 왠지 최선을 다하는 느낌이다. 어떤 일이든 거절을 못한다. 자신의 생각은 줄이고 오직 상대가 원하는 것에 자신을 맞춘다. 자신의 의지나 감정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상대방 욕구에 자신을 맞추려다 보니 무조건적으로 희생한다. 희생으로 끝나면 착한 사람으로 끝날 수 있지만 본전 생각이 난다면 화병을 불러온다.

우리는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한 때부터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장난감을 친구에게 양보하면 착하다며 사탕을 받았고, 다른 친구들보다 청소를 열심히 하고, 친구들이 하기 싫어하는 궂은일을 하면 선행상을 받았다. 성적우수상만큼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린 상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는 착한 사람이 아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아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른이 되자 누구도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착한 사람의 모습을 택하고 남에게 착한 사람으로 불리길 원한다. 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 착한 사람이 대접받는 정상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착한 사람은 상(賞)이 아닌 상처만 남는 듯하다.

어떠한 경우라도 긍정의 요소를 찾아내도록 애써야 한다. 애써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삶의 방향키를 ‘자신’이 잡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는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하는 지독한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에 애씀의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나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음가짐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서 자연치유 능력이 더 활성화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울기만 한다고 해서 슬퍼서가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다. 운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현재 살아 있음을 증명해주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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