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이심리상담센터 박 경 은 철학박사(심리학전공)

삶(生)과 죽음(死)에 있어서 ‘태어난 것은 순서가 있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란 말이 있다. 또한 자녀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부모 또한 자녀를 선택할 수 없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 모두는 전적으로 무능력함을 의미한다. 다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성실하게, 서로 감사한 마음으로 살기를 바라는 우리의 깊은 무의식의 소리를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날, 아이들을 데리고 충남 예산에 있는 수덕사로 템플스테이(사찰 생활 체험)를 갔었다. 저녁 식사 후 스님과 담화 시간을 가졌다. 스님의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이 부모가 자녀를 선택한 것이 아니니 부모로서 막중한 책임을 가지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자녀가 부모를 선택하는 것이니, 그 모든 것에는 자녀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때 무거웠던 마음이 편해졌던 경험이 아직도 여운으로 깊이 남아 있다.

자녀가 부모에게 보내질 때는 ‘부모의 미해결문제를 도와주러 온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 자녀가 자신의 임무를 다했을 때는 태어난 순서와 상관없이 먼저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고 했다. 가끔 동화책을 읽다보면, 자녀가 온 곳은 우주보다 더 먼 곳에서 왔다는 내용의 글을 보기도 한다.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지는 각자의 삶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그 가치관이 무엇이냐에 따라 자신을 우울하게도 하고 살만한 세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삶의 중심인 ‘자신’을 포기하는 순간이 곧 끝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이 살아가는 동안에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은 ‘모른다’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 중 ‘희로애락(喜怒哀樂)’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생명체는 인간뿐이다. 그 속에 우리의 삶이 녹아져 있다. 우리는 흔히 고난과 불행이 찾아올 때 비로소 진정한 친구를 분별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각자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표현하고 있다. 반대로 기쁨과 행복이 찾아올 때는 어떠한가? 그럴 때는 모두가 ‘진정한 친구’라고 착각하게 된다. 이 말의 의미는 누구나 즐겁고 좋은 일에는 동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마음의 동참이 아니기에 우리는 관계 안에서 좌절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진정한 마음이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란 마음이 아니다. ‘네가 기뻐하니 나 또한 정말 기쁘다’의 마음이다. 출생과 함께 누구에게나 하얀 도화지를 하나씩 가지고 태어난다. 자신 안의 마음이 하얀 도화지처럼 넓고 깨끗했을 때는 즉 선입견이 없을 때는 가짜 친구, 진짜 친구의 종류가 없이 모두 친구가 된다. 그러나 하얀 도화지에 각 사람마다의 표상이 정해지면 그때부터는 가짜 친구, 진짜 친구로 깊이 스며듦을 알게 된다.

근묵자흑(近墨者黑), 즉 먹을 가까이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는 뜻으로, 사람도 주위 환경(사람)에 따라 행실을 보고 배움에 있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드물게는 ‘흰 천에 검은 물이 들면 다시는 고칠 수 없다’라는 말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착한 사람과 같이 살면 향기로운 지초(芝草)와 난초(蘭草)가 있는 방 안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도록 그 냄새를 알지 못하나 곧 더불어 그 향기(香氣)가 동화(同化)된다’란 공자의 말씀에서 유래된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백지상태였을 때가 가장 행복했을 때가 아닌가 싶다. 백지상태란, 아무것도 모른 상태, 아무것도 아닌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나의 마음은 결국 ‘모른다’에 이른다. 어떤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모른다’가 아니다. 이것은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은 ‘안다’와 ‘모른다’에서의 ‘모른다’를 의미한다. 이 말은 깊은 의미는 삶에는 그 어떤 것도 정답은 없다라는 말과 상통할 수 있다.

과거의 자신의 삶이 어떤 삶을 살았든, 어떤 관계맺음을 했는지 등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때론 과거의 행동으로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성장을 하고 있다. 육체적으로 성장판이 닫아졌을지는 모르나, 우리의 내면은 죽을 때까지 성장을 거듭하게 되며 잘 살기 위해서는 성장을 거듭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삶의 주인이라고 해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성실하고, 양심적이어야 한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을 기본 전제로 한다. 자신이 미숙함과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겸손하고 겸허한 자세와 더불어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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