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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머니와 친정길

김 항 규 목원대학교 명예교수 심리상담사

2022년도 어느 새 첫 달이 지나고, 새로운 달 2월과 함께 설 명절을 맞았다. 해마다 추석이나 설과 같은 명절을 맞게 되면 나에게는 어머니와 나 사이에 얽힌 두어 가지 추억 이야기가 되살아나곤 한다.

우리 어머니의 친정은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이다. 어렸을 적 외갓집에 가면 볼 수 있었던 시골 터, 외갓집 뒤꼍에 있던 커다란 밤나무, 외갓집 옆쪽을 바라보면 멀리 우뚝 서 있던 비홍산에 대한 기억 등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머니는 홍산면과 함께 같은 부여군에 속해 있는 나의 고향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으로 십 대 후반에 시집오셔서, 2020년 10월 가을이 절정일 때쯤 90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가실 때까지 그곳에서 내 동생 식구들과 함께 내 고향을 지키고 계셨다.

우리 어머니는 가만히 앉아 계시는 성격이 아니셔서 늘 이른 새벽부터 일터로, 혹은 동네 이 집 저 집으로 바쁘게 돌아다니셔야 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우리 어머니에게‘오토바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나 역시 그런 어머니의 성격을 꼭 닮아서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내가 살고 있는 세종시 금남면에 있는 금덕정 활터에 나가 두 시간 이상 국궁을 즐기고 돌아와 아침을 먹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내가 젓먹이 어린이였던 시절, 어머니께서 갑자기 친정에 가시고 싶을 때면, 아침나절에 큰아들인 나를 들쳐 업고 산길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친정 홍산을 향해 걷기 시작하셨단다.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해서 ‘땟종고래기’라는 곳을 지나 임천면 ‘덕고개’라는 고갯마루에 이르게 되면, 그곳에서 잠깐 쉬시면서 등 뒤에 업혀 있던 나를 풀어 젖을 먹이고 난 뒤, 또다시 잰걸음으로 걷기 시작하여 점심 전에 외갓집에 도착하셨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나에게 들려주곤 하셨다.

몇 년 전 설날 아침, 형제들과 아침을 같이한 뒤 나는 문득 어머니를 내 차에 태우고, 어린 시절 나를 업고 걸어가셨다는 어머니의 친정 길을 더듬어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와 함께 나의 고향 세도면에 이웃하고 있는 임천면 어느 부근에 가니 그곳에 옛날 커다란 우물터가 있었고, 지금은 그 동네 사람들이 그 우물을 덮어 식수를 공급하는 약수터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동네 이름이 ‘대정골’ 즉 ‘커다란 우물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연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내게 들려주시던 ‘땟종고래기’라는 곳이 곧 그곳 ‘대정골’을 그저 들리는 대로 표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를 태운 내 차는 집을 출발한 지 15분도 지나지 않아 그 옛날 어머니께서 허겁지겁 내달아 오시던 걸음을 멈추고 나에게 젖을 물리셨다는 덕고개 마루에 도착하였다.

그 고개에 다다르니 앞에 들판이 넓게 펼쳐졌고 들판 저 너머에 어머니의 친정집이 있는 홍산면이 아련히 보였다.

나는 그 고개에서 차를 멈추고, 그 시절 이곳 고갯마루에 도착하셔서 지친 걸음을 잠시 멈추고 등에 업혀 있던 나를 풀어 당신의 젓가슴을 내밀어 젖을 먹이셨을 젊은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리고 흡족한 표정으로 새까만 눈망울을 굴리며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흠뻑 배불리 배를 채웠을 나의 어린 시절 모습도 그려 보면서 한동안 따뜻한 추억에 잠기고 말았다.

어머니는 그 잠시 쉬신 후에 곧바로 친정집까지 단숨에 도착하셨고, 그럴 때면 외할머니께서 뛰쳐나와 장남 외손자인 나를 안아 주시며 많이 예뻐하셨단다.

세월이 산더미처럼 지나가 버린 어느 명절날, 내 차는 출발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외갓집 동네에 도착해 있었다. 외갓집 동네에는 그러나 외할아버지도, 추억이 서린 외갓집도, 시골 장터도 보이지 않았고, 어릴 적 기억 속에 너무 높아만 보였던 비홍산만이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시집오셔서 아버지와 20년도 함께 사시지 못하시고 어머니의 나이 30대 후반에 위암을 앓던 아버지를 먼저 저세상에 보내시고 난 후, 홀로 다섯 명의 자식들을 돌모며 90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

나는 어머니와 같이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친정 길을 생각할 때면, 친정 길을 가시는 동안 어머니 등에 업혀 어머니와 나누었을 깊은 사랑의 교감이 지금도 느껴지는 것 같다.

어머니와 나눈 그 사랑 덕분에 나는 오늘을 살면서 나 자신과 남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웃에게 봉사할 요량으로 심리상담사의 역할을 미약하게나마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확신하며, 사랑으로 나를 키워 주신 어머니에게 감사드린다.

어머니께서는 또한 명절 때가 되어 형제들이 함께 모이면 나와 관련된 태몽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시곤 하셨다.

새댁 시절 어느 날 어머니께서 꿈에 외갓집 뒤꼍의 밤나무 밑에 가셔서 누가 볼세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밤나무 밑을 열심히 팠더니 땅속에 누런 놋그릇 한 벌이 있어 얼른 그 놋그릇을 치마에 넣으셨단다. 그 꿈을 꾸고 나서 바로 나를 임신 하셨다며 그것이 태몽이었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어머니께서 이런 태몽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실 때면 늘 덧붙이는 말씀이 있었다. “내가 너를 가졌을 때 친정집 밤나무 밑에서 놋그릇 한 벌을 파낸 태몽 꿈을 꾼 것을 보면, 너는 세상 살면서 적어도 굶을 팔자는 절대 아닐껴.” 어머니의 말씀이 그 후 나의 삶의 과정에서 얼마나 큰 힘으로 작용했는지 모른다.

나는 때때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도 한 번도 내가 금전적 궁핍함을 경험하면서 가난하게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젊은 어머니들에게 심리상담 강의를 할 때면 내 어머니의 태몽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그리고 어머니들에게 자신이 낳은 자식이 얼마나 큰 축복 속에서 이 세상에 태어난 소중한 존재인가를 내용으로 하는 이야기를 예쁜 그림책으로 만들어 자녀에게 들려주고 선물로 남겨 줄 것을 건곡하게 권유한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그림책 속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아이는 그 덕분에 일생을 긍정적 자신감을 가지고 삶 속의 어려움을 당당히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올해 두 번째로 어머니가 안 계시는 설 명절을 맞는다. 이번 설에는 유독 우리 곁을 떠나가신 어머니가 참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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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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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연 2023-01-22 13:55:14

    우리 마음에 언제 들어도 그리운 이름 중에 어머니 만한것이 있을까 고향이나 친구보다 더 가슴 먹먹한 이름이다 오늘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한다 오늘 엄마가 돌아가신 나이를 내가 맞이한다 설을 맞이하여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고 내일의 계획을 세운다 늘 준비 하고 살아야한다고 하셨는데 나는 아무런 준비를 못해구나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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