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이심리상담센터 박 경 은 철학박사(심리학전공)

‘불효자는 웁니다’란 노래 가사가 떠올렸다. 정신분석 스터디 제목이 ‘내 안의 진짜 얼굴을 찾아 떠나는 심리 여행’으로 자기 정신에 자신도 모르게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그 무엇을 찾아보는 작업이었다. 우리의 무의식은 의식으로 행해지는 것보다 몇 배로 강력하고 많은 영역에서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신의 ‘정신구조(mental structure)’라고 말할 수 있다. 노래 가사에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 흘리시고, 못 믿을 이자식의 금의환향을 빌고 계시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핏줄이 어느 가정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정서에 뿌리 깊게 있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했다.

친정아버지께서 병환 중에 계시는데, 부모님께 이 정도로 화를 내 본적은 내 기억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고 나서 며칠을 끙끙 앓았다. 화를 낸 배경은 이렇다. 친정어머니께서 청력을 잃으신 지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집 앞에 다른 사람들이 던져놓고 간 폐지를 줍고 있는데, 다른 분이 오셔서 어머니를 밀고 그 폐지를 줍는 과정에 허리굴절을 당했다. 그 광경을 경찰이 보면서 신고접수가 들어간 상태였는데, 가해 측에서 부모님께 찾아와서 돈이 없다고 봐달라고 했다고 한다. 직접 얼굴 마주하면 감정에 이끌리니 둘째 언니가 그 부분은 해결하겠다고 했고, 언니를 통해서 집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고, 부모님이 판단도 흐리고 치매증상도 있으시면 부모님과 합의하면 무효라고 말까지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허리골절 진단을 받았고, 그런 일이 며칠이 지나지도 않는 상태에서 여러 번을 찾아왔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그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치료비도 안 받고 백만 원에 합의를 해주었고, 어머니는 경찰조사에서 다른 사람 말을 듣지도 못하시면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말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동안 언니들은 응급실로, 병원으로 쫓아다니는 애씀과 가해 측과의 여러 번의 통화 등에 대한 수고로움을 생각하지도 않는 채 부모님은 ‘늘 남이 먼저구나’라는 생각에 화가 났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화를 냈다. 사실 가해측 사람들이 너무 했다란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나조차도 남에게 화를 못 내고 아버지한테 화를 내고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항상 남이 먼저냐고, 자식들의 수고로움과 미안함은 없느냐고, 부모님이 늘 그런 삶이 우리한테도 얼마나 깊숙이 깔려있는지 아느냐고, 그래서 내 것을 먼저 챙기는 것보다 남을 더 챙겨주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을 때 우리처럼 하지 않고, 얼마나 치열하게 피 터지는지 아느냐고, 이런 성격이 때로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하냐면서……. ” 아버지 가슴에 ‘못 박는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아버지는 힘없는 소리로 “미안하다”라고만 하신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수없이 생각하다니 ‘나도 못됐구나. 성질머리하곤’ 질책하는 나를 보았고, 그러면서 피곤이 몰려왔다. 불효자는 왜 울어야 하는 것일까? 이 단어가 올라오면서도 그 순간에 나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더 솔직히 부정하고 싶었고, 회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항상 부모님의 삶의 태도 즉, 근면하고 성실함이 나의 재산이라고 살아왔던 것을 내 입으로 부정한다고 내뱉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사실 부정은 아니지만 그런 부모님이 처음으로 짜증이 났다.

스위스의 정신 분석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녀에게 자기 스스로 사랑이 넘치는 부모가 되어주려고 애쓰는 것 역시 고아의 딜레마”라고 했다. 이렇게 자기 내면에 ‘고아’의 원형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고통의 원인은 자신의 외부에 있다고 인식하도록 독려해줘야 한다. 어린 시절에는 자신이 그런 환경을 만들었던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책임지려는 자세가 결국 자신을 더 힘들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악한 사람을 만나도 그들이 문제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감당하려고 하니 버거워서 그 상황을 포기하거나 떠나야만 했을 것이다.

고아의 원형은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배신당하고 짓밝히고 있다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면서 어떠한 상황이 일어날 때의 대처방식을 보면서 알게 된다. 부모님조차도 받지 못했던 것을 주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었을 것이고, 자녀에는 자신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도록 선택하는 방법으로 늘 자식의 금의환향(錦依還鄕)을 비는 것은 아닌지 불효의 마음으로 반성해본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금의환향은 성공과 출세가 아닌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내면의 건강한 정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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