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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럼] 인터넷 게임 과의존 현상의 특징

어느 어머니의 하소연 내용이다. 『사춘기가 빨랐던 초등학생 4학년 아들이다. 지금은 고등학교 3학년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매일같이 게임을 한다. 엄마는 아이 눈치만을 살피고 행여 싸워서 감정이 상할까봐 조바심을 가지고 말을 한다. 처음에는 좋은 말로 이야기 해보기도 하고, 타일러도 보고, 게임시간을 서로 약속도 정해보기도 하지만 전혀 지키질 않았다. 그러다가 싸워보기도 하고 화도 내보기도 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사이만 더 나빠졌다. 그나마 아빠의 말을 조금 듣기라도 했다. 감정적으로 아빠와 싸우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아들은 ‘엄마는 감정적이잖아. 아빠는 감정적으로 말하지도 않고, 말하는 도중에 목소리 톤도 올라가지 않아. 엄마랑은 대화가 안 통해.’ 사춘기 청소년들은 부모 마음이 얼마나 수 천 번 무너질 거라고 생각은 못할까? 반대로 사춘기에 있는 청소년의 마음은 얼마나 그 상황이 짜증이 나고 자신도 어찌하지 못하는 감정 때문에 힘들 것이라는 것을 부모가 알아주지 못할까? 서로가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서로가 참고 배려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낸 날들이 9년째다. 날마다 새벽 3시까지 게임을 한다. 보다 지친 부모는 이렇게 말한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부모가 알면서도 그냥 지켜만 보면 적어도 양심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부모를 바보로 아니? 벌써 이렇게 지켜본 지 9년째다.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사춘기 청소년을 넘긴 부모들의 말은 똑같다. ‘좀 더 놔둬라’ 고. 그러면서 부모가 되고 서로 성장하는 것 같다면서. 공부할 놈은 공부한다고. 그리 애 탈 필요가 없다고 선배 부모들의 동일한 말이다.』

이런 경우 부모의 태도가 다섯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경우에는 자식을 포기해서 부모 스스로가 밖으로 맴도는 경우가 있다. 언어로써 ‘포기’라는 단어 일뿐이지 부모가 자식을 포기하는 사람이 몇 프로나 될까? 자식은 그런 부모의 마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를 자퇴하면서도 은둔자가 되기도 한다. 오죽 답답했으면, 오죽 서로가 불편하고 힘들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두 번째 경우에는 자식의 모든 일정을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 관여한다. 좋은 말로는 관심이고 ‘너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자식은 ‘숨이 막힌다’라는 표현을 한다. 이런 경우는 부모가 힘의 원리에서 부모가 더 강하다는 것을 의미이다. 세 번째 경우에는 매일같이 자식을 위해서 교회나 성당 또는 절에 가서 기도하거나 시시때때로 사주를 보러 가는 부모이다. 네 번째 경우에는 부모나 자식이나 똑같이 게임을 즐기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자식이 싫어해도 옆에서 계속 잔소리도 하다가 달래기도 하는 부모, 즉 당근과 채찍을 끊임없는 주는 부모이다. 그 어떤 것을 선택함에 있어서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부모가 인터넷 게임을 과하게 하는 것을 염려하는 것은 이런 것들 때문이다. 인터넷 게임 과의존은 ⓵ 소통의 부재를 가져온다. ⓶ 분노의 감정을 자주 들어낸다. ⓷ 생활의 전반적으로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⓸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하지 않는다. ⓹ 창의적 사고, 유머감각 등의 부재를 경험한다. ⓺ 스스로 소외시키면서 소외당함처럼 인지한다. ⓻ 대인관계에서의 피상적이고 편협하다. ⓼ 가족 안에서도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⓽ 타인의 감정, 배려, 사랑, 애정 등이 사라진다. ⓾ 게임 외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힘들다. ⑪ 남의 탓을 잘 하게 된다.(~때문이야) ⑫ 자신을 점검하고 반성하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⑬ 게임에서 지면 그 화가 가장 가까우면서도 약자(동생이나 엄마, 개나 고양이 등)에게 온다. 엄마가 어렵고 무섭다면 또 다른 대처사물이 필요하다. ⑭ 게임 외에 다른 세상을 경험하려 하지 않는다. ⑮ 건강한 식습관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⑯ 강한 삶을 살지 못한다. ⑰ 참을성이 없어진다. ⑱ 자신을 돌아보려고 하는 자아성찰의 계기가 없다. ⑲ 자신의 성격과 생각이 마치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현상들이 과할 때 적용되는 현상이다. 형태는 다양하다. 과하면, 과해서 우리는 그것을 '중독'이라 말한다.

어떤 부모를 막론하고 자식이 잘 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설령 부모인 자신이 좋지 않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하더라도 자식에게는 최선을 다한다. 그 모습이 서로 다른 형태로 보여 질 뿐이다. 부모 마음을 헤아리는 경우는 사람마다 찾아오는 시기가 다를 뿐이다. 부모 욕심이라면 그 시기가 빨라 왔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그 누구도 모른다. 그 당사자인 자식들도 모를 일이며 오히려 부모 자신도 어른이 되지 않고 어린아이인 채로 있는 경우도 더러 볼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자식들이 좋은 씨앗이길 바란다. 자식이란 씨앗이 좋은 씨앗이 되도록 관심과 사랑을 놓치지 않겠지만 지치지 않도록 거리와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동안 잘 해왔다가 한순간의 감정 폭발로 자식과 틀어져서 원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부모도 자식 못지않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사람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단지 부모일 뿐 온전한 어른이 아님을 자식이 알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을 바라는 것도 욕심일까? 또한 자식은 부모에게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을 갈구할 것이다.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스스로 포기하거나 지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마음의 씨가 존재하는 한, 끝까지 씨앗을 틔워야 하는 스스로의 책임이 있음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 가득이심리센터 심리학박사  박  경  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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