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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노와 염치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염치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과 다른 여러 가지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흔히 인간의 특성으로 말하는 언어나 도구를 사용한다거나 무엇을 즐길 줄 안다는 것, 또는 사회를 형성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특성이 있다. 

그것이 바로 염치이다. 염치를 안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족쇄요, 동시에 인간의 발달을 가져온 동력이었다.

어쩌다 잘못을 저지르면, 내가 모자라는 짓을 했을 때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진다. 얼굴만 붉어지는 것이 아니라 화끈한 열기까지 느끼게 된다. 누가 그것을 알아채기도 전이고,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았음에도 그렇다. 그것은 내가 나를 알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먼저 알고, 내가 떳떳지 못하다는 것을 남보다 먼저 알고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천차만별이라더니 사람은 참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스스로 잘못을 알기는커녕 남들이 다 잘못했다고 말해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나서서 손가락질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말이 사람이지 이런 부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미덕을 지닌 이가 정말 사람이다.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제동장치가 없는 욕망의 기관차이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는 달릴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무엇에 부딪치거나 그로 인하여 또 무엇이 깨지고 비뚤어진다는 것도 염두에 없다. 오직 목표를 향해 돌진할 뿐이다. 참으로 두려운 뒤퉁거리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은 쉽게 분노하며, 그 분노 또한 정도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염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염치를 모르는 사람은 터무니없이 크고 많은 것을 탐낸다. 

내가 힘이 있는데 그것이 틀린 일이라 하더라도 네가 어쩌겠느냐는 것이다. 그들의 그릇된 폭주를 누군가가 제지하고 나서면 부끄러워 몸을 사리기는커녕 상대를 향하여 곧장 칼을 빼어 든다. 

그 칼날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다. 칼 자체도 두렵지만, 그 칼을 쥐고 있는 손의 떨림이 더 무섭다. 칼은 쓰는 사람에 따라 힘이 달라진다. 마음 바탕에 덕이 깔린 사람은 무엇을 베더라도 조심스럽다. 

그러나 마음에 증오와 복수심이 가득한 사람은 거칠 것이 없다. 무딘 칼날로도 굵은 나무 둥치를 베어낸다. 나무 둥치만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뿌리까지 도막을 낸다. 실로 무섭고 두려운 존재이다.

염치와 분노는 반비례한다. 염치가 좋다는 말은 염치를 잘 알아차린다는 뜻이 아니라 염치를 모른다는 말이다. 어째서 염치를 모르는 것을 좋다고 표현한 것일까.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어려서 하던 놀이 중에, 눈을 감고 ‘눈깜땡깜’이라고 말하면서 두 팔을 벌려 내저으면 네가 알아서 피하라는 것이었다. 막무가내로 휘젓는 내 팔에 맞아도 나는 상관치 않겠다는 염치없는 놀이이다. 내 잘못이면서도 네 책임이라는 터무니없는 짓이다.

염치를 모르던 사람들은 이제 그만, 염치가 좀 있어야겠다. 감았던 눈을 뜨고 이제는 ‘너’를 좀 보아야 한다.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고 목청을 높이기보다 붉은 얼굴로 고개를 숙여야 한다. 

염치가 없는 세상은 우선 나 살기에만 좋을 뿐이지 내 자식들이 살아야 할 미래를 어둡고 비탈지게 만드는 일이다. 비탈을 걷다가 벼랑 끝에 매달리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제 염치를 아는 세상, 염치가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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